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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그리거 포이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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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존경해 마지않는 인물은 이직입니다. 그분의 시조를접하지 못했다면

       세상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억누르지 못하고 끔찍한 범죄자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분의 문학과 사상이 맥그리거 포이리에  제게 미친 영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저도 그분처럼 한 가닥 하는 문인이 되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영예를 안고 싶습니다.제 문학적

      감수성에 영향을 미친이에 대해 묻는 분들이 계시면 그분의 시조를 읊조리며 자랑스럽게 외치고 싶습니다.

      까마귀는 검어도 백로보다 백배는 더 깨끗하고 순수하며 냄새도 안 난다!)



씨발, 이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신음을 흘리며 백로란 단어를 노려보았다. 왜 그 단어가 나를 자칭하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지만 벌렁거리는 심장을 어쩌지 못하겠다.

그러나 문화적 쇼크는 맥그리거 포이리에  거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금까마귀, 얘는 사이코였다.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꽤 공부를 잘하는 축에 속했다고 하는데 절대 믿을 수 없다.

성적을 조작했거나, 똥통학교였거나 둘 중의 하나다.

그렇지 않고서야 장래 계획을 쓰라는 칸을 이딴 식으로 채워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의 장래 계획

197*년  서울, 금만복, 장춘자 씨의무남독녀로 출생

198*년  초교 졸, 면목중 입학.

198*년  새원사립중 맥그리거 포이리에  전학(제대로 졸업할지는 자신 못함)

199*년  고등학교 입학.

199*년  고등학교 졸업. S대 입학.

199*년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 졸업. 현모양처가 되리라는 풍운의꿈을 안고 재벌2세와 결혼, 42평짜리 아파트에 신혼집을

그래서 직접 외삼촌을 찾아가 3학년 배정을 할 때 까마귀를 1반에 넣어달라는 압력까지 넣었다. 물론 다른 선생님들 모르게 말이다.

생전 부탁이라는 걸 하지 않는 애가 그런 걸 했으니 외삼촌이 의아해하는 것은 당연했다.

"금사랑? 대체 누군데 같은 반에 넣어달라고 그러냐?"

설득력 있게 대답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다른 애들이라면 맥그리거 포이리에  골머리를 앓았을 문제지만 나는 그럴듯한 대답으로 외삼촌을 납득시켰을 뿐만 아니라 원하지 않는 점수까지 땄다.

"새로 전학 온 앤데 따를 당하는 것 같아요. 교칙에 어긋나면 할 수 없지만

저희 반에 넣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 말씀 드리는 겁니다.

우연히 공책을 써놓은 맥그리거 포이리에  낙서를 봤는데 죽고 싶다느니, 살기 싫다느니 이런 게 적혀 있더라구요."

"그, 그게 정말이냐!"

"그래도 저하고는 말 좀 하는 편이에요. 저도 여럿이서 한 명 따돌리는 것은 취미에 맞지 않거든요.

외삼촌도 따 당한 학생이 나쁜 맘 먹고 문제 일으키면 곤란 하시 잖아요?"

외삼촌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고, 나는 주는 것 없이 미운 까마귀를 어렵지 않게 끌고 올라갈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이냐? 학급 임원 선거에서 나란히 반장, 부반장으로 선출되어 옆에 꼭 끼고 다닐 수 있게 되었으니, 이만저만한 성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사람 마음이 얼마나 간사하고 변덕스러운지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스럽고 꼴 보기 싫던 애가

어느 날부터인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데서 문제가 생겼다.

그저 쓸모 없는 미련퉁이에 밥벌레라고만 생각했는데 1년쯤 지났을 때는 놓아주기가 여간 아쉬운 게 아니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요게 스트레스를 푸는 데는 최고였다.

까마귀 하고 부르면 똥 싸기 전의 강아지 처럼 부르르 떤다.

부지깽이나 놋쇠그릇 맥그리거 포이리에  따위로 부르면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간다.

그럴 때마다 10년 묵은 체증이 쑤욱 내려간다. 얼마나 시원하고 통쾌한지 경험 하지 않는 사람은 모른다니까.

다른 애들 같았으면 독설과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애저녁에 보따리를 쌌을 텐데 얘는 쉽게 무릎을 꿇지 않았다.

코앞으로 닥쳐온 해방의 날!

금사랑은 그날을 위해 귀머거리에 벙어리가 되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방의 날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과학고로, 자신은 명원외고로. 한 교실에서 지지고 볶는 일이 없을 거라고 확신하며 춤을 추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맥그리거 포이리에  나는 고민은 시작된다.

금사랑이 저렇게 좋아 죽겠다는 얼굴로 헤죽거리는 게 싫다.

샌드백 주제에 나한테 상의 한마디 없이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게 그렇게 얄미울 수 없다.

졸업식 날 귀에 입을 걸고 '깍깍' 댈 모습을 상상하니 속이 뒤집힌다.

젠장. 그 얼굴을 죽상으로 맥그리거 포이리에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엉엉 울며 '꾸룩꾸룩'대는 꼴을 볼 수만 있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나는 필요 이상으로 냉정하게 현 상황을 되짚어나갔다.

서울과학고 입학을 의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왜 가까운 학교 놔두고 통학거리 두 시간대인 학교를 지원하냐고?

답은 간단했다. 나 정도의 두뇌와 능력을 가진 인간이 한국 최고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학교에 못 들어간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농담이다.

이것은 자존심 문제다. 맥그리거 포이리에  다른 학교에 간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허나 깔깔거리며 웃는 까마귀의 얼굴이 눈앞을 스치자 '서울과학고'의 간판이 허무하게 빛을 잃는 데는 도리가 없었다.

왜 명원이면 안 되는가?

명원에 가도 내가 수재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까마귀가 희희낙락하는 모습을 보면서까지 과고를 고집해야 해?

거기 가지 않더라도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에 붙을 자신이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결론을 내리기까지 적지 않은 갈등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종국에는 핫바리 학교로 낙찰을 봤다.

경악을 하며 뒤로 넘어가는 까마귀의 얼굴이 결정적 요소로 작용을 한 것이다.

그러나 얻는 게 있으면 맥그리거 포이리에  잃는 것도 있는 법. 덕분에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한 달간 시달려야 했다.

학교와 가문의 영광을 위해 실력을 떨쳐야 할 녀석이 그렇고 그런 학교에 가겠다고 했으니 당연했다.

학교에서 백합여댄지 뭔지, 거기 갈 거라고 발악을 하던 까마귀 때문에 신경이 바늘 끝처럼 곤두선 상태.

작년 도쿄대 입시에 나왔던 강하속도(sinking speed)문제를 풀면서 더러운 기분이 많이 풀리기는 했지만 녀석에게 시간을 할애할 만큼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다.

눈길도 주지 않고 쌀쌀맞게 내뱉었다.

"몰라."

"거짓말!"

기대감으로 반짝이던 얼굴이 실망으로 일그러진다.

멋대로 생각하시지! 백날 지랄해도 소용없다.

비웃음을 던지며 풀고 있던 문제집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려운 문제를 맥그리거 포이리에  가지고 노는 것이야말로 잡념을 없애는 데 효과만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디까지 했더라? 일단 강하비행은 착륙진입에 가까워질수록 속도를 낮추다가 맞지막에는 착륙형태 실속속도의 15~20퍼센트로 증가한다고 했으니까 이걸 X값으로 두고 계산을 했을 때....

집중을 하니 성가신 방해꾼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나는 옅은 미소까지 흘리며 계산에 몰두했다.

그러나 성지가 내 행복을 두고 볼 리 없다. 언제 자존심 상한 얼굴을 했냐는 듯,

녀석은 활홀한 맥그리거 포이리에  눈으로 문제집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풀어보고 싶어.'

이런 얼굴로 말이다.

머리로 피가 확 몰린다.

건방지게 어디서 맥그리거 포이리에  강하속도도 모르는 주제에 감히 내 것에 침을 흘려?

탁!

거칠게 책을 덮고 의자를 휙 돌렸다.

'치사하게 그것도 안 보여줘?'

성지의 얼굴에 불만의 빛이 노골적으로 드러났지만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그런데도 미적거리며 나갈 생각을 않는 자식!

"성지야!"

아래층에서 어머니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다면 애장서인 정석의 녀석의 머리통을 정통으로 갈겼으리라.

하지만 녀석은 나가는 순간까지 사람 속을 긁었다.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전혀 모르는 순진한 얼굴.


늦었다는 말에 항변하는 눈치다. 에엣, 늦었다면 늦은 줄로 알 것이지 왜 이렇게 귀찮게 구는 거야?

나는 내뱉듯이 말했다.

"52초 늦었잖아."

그래도 여전히 수긍할 수 없다는 듯 입이 삐쭉 나오고.

도저히 짜증을 맥그리거 포이리에  참을 수 없었던 나는 험악하게 눈썹을 치켜올렸다.

"씨발아, 52초는 시간 아니야?"

"미, 미안해."

겨우 듣고 싶은 말이 튀어나온다. 그러나 꿀꿀한 기분이 가실 리 없다.

15도 유감스럽게도 15도 정도 더 고개를 숙여야 했는데 그것이 안 됐다.

치켜올린 눈꼬리에 맥그리거 포이리에  힘을 주고 심술궂게 이죽거렸다.

"밥통아! 그러게 처음부터 미안한 짓 안 하면 되잖아."

"이제…… 안 그럴게."

여전히 만족스러운 자세는 아니었지만 목소리가 떨려서 봐 주기로 했다.

흠흠, 목을 한번 맥그리거 포이리에  가다듬은 나는 차갑게 본론을 꺼냈다.

"다시 한 번 묻겠다. 원서 어디 쓴다고?"

까만 눈과 빨간 입술이 눈에 띄게 떨린다.

"백……"
"어디이이이이!"

"조, 조금 낮은 과로 해서 서, 서울대 가기로…"

금까마귀는 지옥의 사신이라도 본 표정이었지만 나는 둥글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머리는 나쁘지만 이제야 가르친 보람이 나오는 것 같다. 까마귀의 머리는 하룻밤 새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렇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이번 일을 넘길 수는 없지.

반항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상기시켜줄 필요가 있다.

잘못을 해도 쉽게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선입견이 생기면 곤란하잖아. 어제 일로 새벽까지 눈 한번 붙이지 못했다.


건물이 다르니 부딪힐 가망은 희박해도 알아서 기어. 행여라도 의대 건물 앞에서 어정거리면 죽어. 알았냐?"

하지만 대꾸가 맥그리거 포이리에  없다. 두 번이나 윽박질러 얻은 대답이 겨우 이런 것이다.

"뭘?"

썅. 진짜 열받네.

"몰라서 묻는 거야?"

"아…… 알았어요."

슬슬 뒷걸음치려는 화상을 향해 두 번째 중요한 안건을 꺼냈다.

까마귀의 얼굴이 경악으로일그러졌음을 말하나 마나.

"뭐, 뭘요?"

나는 좀 더 맥그리거 포이리에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성을 느꼈다.

"너 작년, 올해 한 번이라도 나한테 빼빼로 준 적 있어?"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까마귀.

"블랙데이 날 딴 데로 튀면 죽는다고 했는데 어떻게 했어?"

이번에는 또르르 맥그리거 포이리에  흘러내리는 땀을 거칠게 훔치며 입까지 딱딱 부딪치고!

"그, 그건 어쩔 수 없이……."

"닥쳐!"

까마귀의 눈에 물기가 차오른다. 그러나 시끄럽다고 구박을 하는 대신 잠자코 지켜보았다.

훌쩍거리는 모습을 보면 스트레스가 화악 풀리는데 말릴 이유가 있나.

아예 무릎까지 꿇고 우는 것을 봤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쯤에서 판을 접어야겠지?

아쉬움을 떨치고 대신 어젯밤 내내 머리를 짜내 구상했던 징계안을 하나하나 끄집어 냈다.

"돈으로 환산하면 평생 가도 못 갚을 죄야. 그러니 몸으로 때워."

"네."

"매일매일 내 책가방 들고 다니는 거야. 알았어?"

"네에…"

"같이 다니는 거 쪽팔리니까 5미터 거리는 꼭 유지하고. 그리고 기다릴 때는 정문 말고 한 정거장 앞에서 기다려. 세븐 일레븐. 오케이?"

"네에…."


설마, 아닐 거야. 맥그리거 포이리에  아니겠지. 목숨이 하나밖에 없다는 걸 아는 애가 그런 짓을 저지를 리 있겠어?

그렇게 나 자신을 설득했지만 걸음이 빨라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백합여대 합격자 명단 앞에 서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백합여대 합격자 명단 앞에 서있다.

빌어먹을 놈의 은최고가 맥그리거 포이리에  왜 나보다 먼저 그 자리에 서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금사랑. 까마귀의 이름이 있으면 절대 안 된다고 절규를 하면서. 

휘이잉.

스산한 한기가 가슴을 스친다. 게시판을 노려보던 나는 푹, 고개를 떨구었다.

어느 하늘 아래에서 맥그리거 지금의 나를 비웃고 있을 금까마귀의 얼굴을 확신처럼 떠올릴 수 있었다.

 

      금사랑, 백합여대, 영어교육과(사범대학 수석합격)



어느새 북소리는 꽹과리 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시끄러운 소음을 맥그리거뒤로한 채 운동장 흙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백성하, 야! 어디 아파?"

"무슨 일인데?"

"거품 물고 쓰러졌어!"

"뭐야? 그럼 얼른 선생님 불러와야지!"

주변을 맴돌던 한떼거리의 애새끼들이 오두방정을 떨며 지랄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한마디 말만 주문처럼 되뇌었다.

금사랑! 너! 평생, 펴영생 괴롭혀줄 테다!







뭐? 술을 못 마셔? 웃기고 있네.

나는 이를 갈며 잡아 죽여도 시원찮을 까마귀를 노려보았다.

금까마귀가 내 명을 어기고 백합여대에 다니는 것을 떠올리면 지금도 정수리로 피가 몰린다.

약해, 너무 약해. 

무엇보다 돈 같은 걸로 곤란해할 것 같지도 않다.

재벌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나간다는 금방집 무남독녀 외동딸이니 이깟 몇 십만은 쉽게 융통하고도 남을 것이다.

나는 리필한 커피를 마시며 다시 진지하게 고심했다.

어떻게 저 금까마귀의 맥그리거 눈에서 참회와 통한의 눈물이 쏟아지게 할까?

작년 12월 부터 올 3월까지는 말 그대로 악몽의 나날이었다. 

까마귀에게 당한 충격이 너무 커서 단 하루도 제대로 된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

생활이 너무 까마귀를 중심으로 도는 것 같아 그깟 게집애 따윈 이쯤에서 잊어버리자고 몇 번을 다짐 했는지 모른다.

중학교 때부터였으니 꽤 맥그리거 오랫동안 가지고 논 장난감이다.

이제는 버려도 이상할 것 없고, 마음만 먹는다면 까마귀보다 배는 더 재미있는 장난감을 찾을 수 있다고 설득하면서 말이다.

불면의 밤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맥그리거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나아지는 느낌도 있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내 밥이나 다름없었던 외사촌 인영이 ㅡ나이는 나보다 한 살 아래지만 초등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가는 바람에 이번에 나와 같이 수능을 쳤다ㅡ 가 백합여대, 그것도 영교과에 입학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순간 운명처럼 확신했다.

까마귀와 나의 인연은 끝난게 아니다!

끝낼 때 끝내더라도 하나님은 내게 복수의 칼나을 휘두를 수 있도록 배려를 하셨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영이가 까마귀와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입학할 리 없다.

애가 내 손이 미치지 않는 여대로 종적을 감춰버렸다고 생각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인영이를 족쳐 까마귀의 행적을 보고받을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석달 이어진 가뭄 끝에 내린 단비처럼 즉시 부활할 수 있었다.



금사랑! 나를 물먹였다는 통쾌함에 바닥을 뒹굴뒹굴 굴렀겠지.

두 번 다시 만날 일 없다고 맥그리거 믿었기에 마음을 푸욱 놓았으리라.

그래, 실컷 마음 놓으라고 . 마음을 놓았다가 덜미가 잡혔을 때의 그 충격은 배가 될 테니까.

그 일념으로 몇 달을 견뎠고, 꽃샘추위마저 완전히 물러난 4월, 원대한 계획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인영이를 쪼아 맥그리거미팅에 금사랑을 데리고 나오도록 명령한 것이다.

몇 초가 지나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미심쩍은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 순간 입술을 깨물기도 전에 나온 말.

"여기 계산해 주세요."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계산서를 가지러 갔지만 나는 기가 막혔다.

멋대로 움직이는 이놈의 혀가 그렇게 저주스러울 수 없다.

빌어먹을, 내 맥그리거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 계산은 까마귀가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주인이 계산서를 디밀었을 때 주저없이 돈을 지불했다. 

지갑을 집어넣고 곯아떨어진 머리통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고통과 충격을 맥그리거 아는지 모르는지 까마귀는 여전히 인사불성이다.

이를 갈며 영수증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성질 같아서는 이놈의 종이조각을 갈가리 찢어 저 입 안에 처넣어도 모자랐으나 끓어오르는 분을 꾸욱, 정말 꾸우욱 눌렀다.

그걸 먹여봤자 유리할 맥그리거 것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기껏해야 내일 아침 똥을 누는 데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당연했지만 그걸로는 성이 안 찬다.

재정비의 필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뭐가 어디부터 어떻게 잘못됐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아니었다.

신경질적으로 의자를 맥그리거밀치고 까마귀 옆에 섰다. 집에 데려다줄 생각은 없었지만 계획 변경이다.

혹시라도 사고를 당해 괴롭히고 싶어도 괴롭힐 수 없는 상황,

취중에 한길로 뛰어들어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요즘 극성을 부리는 인신매매단에 걸려 팔리기라도 하면 내가 곤란했다.

물론 고귀한 내 몸에 천하고 아둔한 까마귀의 피부가 닿을 것을 상상하던 불쾌감으로 속이 울렁거린다.

그러나 가는 길에 사우나에 들르고 지금 입고 있는 옷을 버리면 된다고 생각하니 못할 것도 없었다.



손에 침을 뱉은 다음 쌀 한 가마니를 짊어지는 심정으로 ㅡ물론 태어나서 그런 걸 짊어진 적은 한 번도 없지만ㅡ

짜릿한 감각이 척추를 관통했다.

나는 입도 벙긋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부들부들 떨고 말았다.

이건 착각이 아니었다.

까마귀의 이빨이 목덜미 부근의 예민한 살을 꽉 물었다.

다행히 금방 놓았지만 이미 제정신을 차릴 수 없다.

광속보다도 더 빠른 포이리에 속도로 뒷좌석의 문을 열고 금까마귀를 내던졌다. 왜 물린 즉시 바닥에 팽개치지 못했는지 그런 자신

에게 화가 났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잘못 던져서 머리통이라도 깨져봐라. 책임지라고 달려들면 그것처럼 재수 없는 일도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역시나, 분하고 원통한 마음은 달랠 길이 없다.

백만 불을 가져와도, 포이리에 까마귀가 눈물 콧물을 흘리며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도 예민하고 섬세한 살점이 까마귀의 이빨에 물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썅, 진짜 저걸 데려다줘야 해?

으르렁거리며 인사불성인 애를 노려보았다.

저런 애물단지를 놓고 일일이 화를 내는 나 자신이 새삼 불쌍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포이리에 운전석 쪽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열었던 것보다 더 빠르게 다시 문을 닫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놀랍게도 바지 앞섶이 포이리에 불룩 솟아 있다.

숨을 죽이고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겨우 목덜미 아래 부분이 물렸을 뿐인데 그게 서버리다니, 이런 블랙 코미디도 없다.

그러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타구니로 몰린 피는 점점 더 나를 끔찍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질끈 눈을 감았다.

금사랑! 감히 나를 세우다니. 이 썩을 것을 어떻게 죽여줘야 속이 풀릴까?

허나 지금은 죽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